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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순례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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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 강경 성지성당 2021년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16세 때인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 프란치스코는 병사하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입국을 시도하여 페레올 주교와 함께 변문으로 왔으나, 김 부제 홀로 1월 15일 서울에 도착했다. 1845년 4월 페레올 주교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작은 목선을 구입하여 신자들과 함께 상해로 향했다. 그는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1845년 8월 17일 상해(上海) 김가항(金家港)성당에서 조선인 최초로 ..
대전교구 > 홍주 순교성지 / 읍성 곳곳에 순교의 피가 흐른 충청도의 첫 순교터 내포 지역의 중심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던 홍성읍 한복판에 자리한 홍주성은 그 전체가 순교의 현장입니다. 구체적 순교터로는 목사가 머물던 동헌, 홍주옥, 진영장이 머물던 조양문 앞, 옛 저잣거리, 월계천변 참수터, 생매장 터로 사용되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홍성천과 월계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부근이 있습니다. 홍성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조양문인데, 홍주성을 드나들던 동서남북 4개 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동문으로 박해 당시 붙잡혀 온 교우들이 이 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시체가 되어 성벽 밖으로 던져졌습니다. 현재 홍주성의 옛 모습 중에서 성벽과 일부 건물이 복원되었고, 원형 복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순교록과 관변기록 등을 통해 확인된 홍성 순교자는 모두 212명에 달합니다...
대전교구 > 해미읍성 / 수많은 천주교인을 국사범으로 처형한 해미 진영 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에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처소를 둔 곳으로서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된 진영에 1400-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무관 영장이 현감을 겸하여 지역을 통치를 하던 곳이다. 내포 일원의 해안 국토 수비를 명목으로 현감겸영장(縣監兼營將)은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 할 국토 수비의 전공을 기록한 바 없는 해미 진영은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여 년간,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오명만을 남기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서 대박해의 때로 기록된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조정이 천주교 탄압을..
대전교구 > 해미 순교성지 / 생매장 구덩이에 부는 바람 어느 순교지나 선조들의 위대한 정신과 숨결이 느껴져 후손을 자랑스럽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폐부를 찌르는 깊은 신음과 함께 서려 있기도 하다. 해미 순교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도 당시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당한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다. 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에 병마절도사의 처소를 둔 곳으로서,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된 진영에 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무반 영장이 현감을 겸해 지역을 통치하던 곳이다. 내포 일원의 해안 수비를 명목으로 진영장은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대전교구 > 배나드리 / 삽교천가에 형성된 박해시대의 교우촌 [땅에 쓰여진 신앙 이야기] 배나드리 성지 박해시대의 교우촌 - 배나드리는 예산군 삽교읍 북쪽 삽교천 가에 위치한 마을로 도리(島里)라고도 불렸다. 바다로 통하는 삽교천에 밀물이 들어오면 사방에 물이 차서 섬이 되어 배를 타고 건너다녀야 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배나드리는 예산군 삽교읍 북쪽 용동 3리 삽교천 가에 섬처럼 생긴 마을로 도리(島里)라고도 불렸다. 바다로 통하는 삽교천에 밀물이 많이 들어오거나 홍수가 나면 사방에 물이 차서 섬이 되어 배를 타고 건너다녀야 하므로 ‘배나드리’라 하였다. 이런 자연환경이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기에 적당한 마을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마을이다. 1817년 10월 이곳에 밀고자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박해의 손길이 뻗쳐 해미의 포졸들이 나타나 신자들을 모두 체포해 ..
대전교구 > 여사울 성지 / 2023.10 간략설명지번주소도로주소전화번호팩스번호홈페이지전자메일문화정보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가 살던 곳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122-4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신종여사울길 22 (041)332-7860 (041)335-0641 csy3212@hanmail.net 충청남도 기념물 제177호(여사울 이존창 생가터)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李存昌, 1759-1801년)의 생가 터가 있는 여사울 순교사적지는 신례원 본당의 공소를 거쳐 2008년 성지본당으로 지정되었으며, 주민의 상당수가 천주교 신자로 구성되어 있는 선교의 요람이다. ‘내포’(內浦)라 함은 충남 아산(牙山)에서 태안(泰安)까지의 평야 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삽교천(揷橋川)과 무한천(無限川)의 두 물줄기가 흐르는 충남..
대전교구 > 신리 성지 / 2023.10 간략설명지번주소도로주소전화번호팩스번호홈페이지전자메일문화정보 다블뤼 주교의 생생한 흔적이 남은 주교관을 바라보며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신리 62-3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041)363-1359 (041)363-7200 http://www.sinri.or.kr master@sinri.or.kr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위치한 신리 성지는 지금은 말끔하게 단장되었지만 불과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구불구불한 길에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어 택시 기사나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야만 했다. 20-30평 정도 됨직한 자그마하고, 낡은 함석지붕으로 인해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공소 건물이 철조망에 둘러싸여 볼품없는 모습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
대전교구 > 합덕 성당 / 2023.10 간략설명지번주소도로주소전화번호팩스번호홈페이지관련기관문화정보 두 개의 첨탑은 신앙의 파수꾼인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275-2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성당2길 22 (041)363-1061 (041)363-1065 http://cafe.daum.net/JesusMariaJosep 합덕 유스호스텔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 내포 지방은 예로부터 충청도 지역 교회의 중심지였다. 합덕 본당은 바로 이 내포 평야에 복음을 밝힌 지 120여 년이 넘어 한국 교회의 산 증인이 된 유서 깊은 본당이다. 합덕 성당 인근에는 손자선 토마스(?-1866년) 성인의 생가이자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년) 주교의 주교관으로 사용되었던 초가집 주변에 조성된 신리 성지가 있고, 옛 동헌이 있었..